조선시대 국왕의 행행(行幸) 연구-왕실 능행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국왕의 행행(行幸) 연구-왕실 능행을 중심으로
이 책은 조선 왕조의 유교 의례로써의 ‘행행(行幸)’의 의미와 역할을 살폈다. 조선 왕조는 1891년(고종 28)에 개국 500주년을 맞이할 만큼 장기간 지속되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대 국왕들은 ‘유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아 국왕과 신료, 민인의 삼각관계가 계서적(階序的) 신분에 맞추어 자발적으로 작동하는 통치 구도를 지향했다. 이를 위해 왕조 초기부터 유교 의례를 적극 수용하고자 국왕의 행차라고 할 수 있는 행행(行幸)을 수시로 거행하였다. 이는 왕실의 전통적인 이어(移御)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왕실의 행행 의례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반복되고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선대왕과 왕비의 묘소를 참배하러 가는 능행(陵幸)이다. 왕실의 상장례가 후대로 갈수록 증가하고, 그에 따른 능원묘의 조성은 왕족의 행차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하였다. 그 결과 능행이 행행 의례의 대표적인 의례가 되었다. 이와 같이 능행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대상과 범위가 확대되던 의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의례의 참여 인원이 증가하고 동원하던 의장과 기물이 추가된 의례도 능행이 거의 유일하다. 능행처럼 왕조 국가의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상대를 바라보고 확인하는 경우도 없었다. 능행처럼 조선 왕조가 지향한 유교 덕목인 효를 현실에서 재현해 보이는 경우도 드물었다. 바로 이렇게 항상적으로 반복되는 의례의 성격으로 인해 민인들이 자발적으로 왕조 권력 구조를 인정하게 하고, 스스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수긍하게 만들었다.
『승정원일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행행이라는 것은 백성이 거가(車駕)의 행림(行臨)을 행복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거가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백성에게 미치는 은택이 있으므로 백성들이 다 이것을 행복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제 내 거가가 이곳에 왔으니, 저 백성이 어찌 바라는 뜻이 없겠는가? 옛사람이 이른바 행행의 의의를 실천한 뒤에야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였으니, 경들은 각각 백성을 편리하게 하고 폐단을 바로잡을 방책을 아뢰라.”
이 내용은 정조가 1779년 가을에 여주 영릉으로 능행을 가면서 연로에 운집해 나온 민인들을 보고 행행의 의미를 관료들에게 설명해준 것이다. 즉, 국왕의 행차가 민인들에게 행복을 전해준다는 말이다. 실제 국왕의 행차가 지나는 지역에서는 도로의 수리부터 행궁의 수선, 관원의 숙식까지 부역으로 감당해야 했다. 이에 해당 지역에는 세금 감면, 과거 설행, 민원 해결과 같은 각종 혜택이 주어졌고, 민인들도 국왕의 어가 앞에서 평소의 소원을 읍소할 수 있었기에 행행을 즐겨 맞이할 수 있었다.
대개 통치자의 행차는 절제되고 통제된 공간 속에서 규격화된 의식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 황제와 일본 쇼군의 행차가 정확하게 그런 모습이었다. 행차의 주재자부터 동원 인원, 군중에 이르기까지 정적인 모습 위주의 권위와 복종의 관계를 나타냈다. 반면 조선의 국왕과 왕실의 행차는 상이한 모습을 보였다. 중국과 일본의 민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군주를 쳐다보지 못하면서 정적으로 있어야 했다면, 동시대 조선의 민인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국왕과 왕족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는 국왕이 궁궐 외부로 행차하여 민인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준다는 행행의 의미를 민인들이 인식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군주를 위해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유교적 도덕 국가의 완성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조선 왕조가 왕조 초기부터 진행한 군민 소통의 완결성을 이루어낸 모습이기도 하다. 이처럼 조선시대 국왕의 행행은 수백 년간 이어지며 지속된 통치 행위의 하나로서 의례적으로 정착하였다. 이는 곧 정치적으로는 역대 국왕의 권위를 강화해주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신료를 비롯한 민인에 이르기까지 계층적인 질서 체계를 인식하게 하는 매개로 작용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에디터

이왕무

출판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ISBN

9791158666934

출판년도

1 Jan 2022 – 30 Nov 2022

전문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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