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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집과 황화수창
조선은 사대(事大)와 교린(交隣)을 원칙으로 중국 및 주변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특히 명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양국 간 사신의 왕래가 빈번했다. 조선은 매년 삼사(三使)를 보냈고, 외교적 사안이 있을 때마다 진하사(進賀使), 사은사(謝恩使), 주청사(奏請使) 등을 파견했다. 중국에서도 황제의 등극, 태자의 탄생과 책봉, 조칙 반포 등이 있을 때면 조선에 조사(詔使), 천사(天使)라고 불리는 사신을 파견했다. 조선에서는 조서와 칙유를 받들고 온 명 사신들이 조정에 커다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극진히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사신 접대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엄정하게 추진되었으며 조선은 막대한 국력의 소모를 기꺼이 감내해야만 했다. 특히 사신을 접대할 때 고심한 부분은 그들과의 성공적 수창(酬唱)이었다. 사신과 수창할 때 응구첩대(應口輒對)의 작시(作詩)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소중화’로 자처하던 조선의 문풍을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명과 조선이 차례로 개국하고 양국의 사신들이 오가면서 본격적인 문학 교류의 장이 열렸지만, “신하는 외교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명과 조선 문인의 수창은 오직 조선이라는 공간에서만 가능했다. 명 사신과 조선 관리는 의주, 안주, 평양, 황주, 개성 등 여러 곳에서 연회를 가지면서 수창을 했고, 한양에 이르면 사신을 접대하던 태평관과 제천정, 그리고 한강에 띄운 정자선에서 성대한 시회(詩會)를 가졌다. 『황화집』은 조선과 명의 정치·외교적 역학 관계 속에서 조선 문관과 명 사신이 주고받은 문학적인 시문의 결과물이며, 이러한 문학활동을 ‘황화수창(皇華酬唱)’이라 부른다. 조선에서는 자국의 문명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황화집』 편찬을 중시했다. 물론 『황화집』은 조공체제의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에 중국 문인과의 교류를 위해 중국 문헌을 전고로 활용하거나 명 사신 일행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조선 문신들은 『황화집』 서문이나 여러 수창 속에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문화문명관을 강하게 드러냈고, 이는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창화(倡和) 외교사상에서 『황화집』이 갖는 특수한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에디터
심경호, 김한규, 이종묵, 김은정, 박용만, 노경희, 김덕수
출판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ISBN
9791158666958
출판년도
1 Dec 2022 – 31 Jan 2023
전문영역
인문학
주제
국제관계 및 정치
문학
예술과 문화
역사
지역
동아시아
대한민국
북한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