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회 일본과 노동운동의 형성
성공회대 명예교수이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초빙석좌교수인 이종구 교수가 일본 노사관계의 사회사를 고찰한 저서 『기업사회 일본과 노동운동의 형성』이 출간되었다. 노동운동 및 일본지역학 분야에서 꾸준한 연구를 해온 저자는 도쿄대 유학시절부터 일본 노사관계의 현장을 오가며 수행한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국가총동원체제, 미군정의 전후개혁, 고도성장기, 장기불황기에 이은 최근까지 기업사회 일본과 그에 대응해온 노동운동의 형성사를 치밀하게 재구성한다. 이 책은 일본적 노사관계가 전개돼온 과정을 사회적이고 역사적 맥락에 입각해 조사함으로써 한반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인 일본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모델의 한계를 넘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을 거듭해온 일본의 배경에는 이른바 ‘일본적 노사관계’라는 모델이 자리잡고 있다. 근대화를 오롯이 이루면서도 기업과 노조가 갈등과 분열보다는 상호협조적인 관계를 보여준 ‘일본모델’에 세계는 비상한 관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일본을 거울삼아 자국의 노사관계를 정립해보려는 실용적 목적이 앞선 나머지, 일본모델은 흔히 가족과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일본의 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거나 국가와 자본의 탄압을 강조하는 단순한 음모론에 기울기 일쑤였다.
이 책은 일본적 노사관계를 문화적 특수성에서 찾는 담론, 즉 이에(家) 제도라든가 화(和)을 중요시하는 문화 덕분에 가족 같은 노사관계가 성립되었다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연공제와 기업별노조를 중심으로 사회통합을 꾀한 ‘기업사회 일본’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사회적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도전받았고 지금도 변모중인 역사적 산물이다. 일본의 연공제는 고도성장기와 그 종언을 거치면서 한계를 드러냈고 정규직으로 그 적용 대상이 축소되었다.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사회통합 역시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되면서 점점 분열과 해체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체적 조감도 안에서 국가총동원체제 이후 현재까지 일본 노사관계의 사회사적 궤적을 하나하나 되짚어나간다.(1장)
이 책은 일본의 현대적 노사관계의 출발을 미군정의 노동개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총력전 시기의 국가총동원체제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이른바 산업보국회(산보)는 전쟁 수행을 위한 어용기관으로 전시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노동력 동원에는 큰 성과가 없었던 반면 의외의 효과가 만들어졌는데 그전까지는 자본가의 가족으로 취급되던 노동자에게 국가에 기여하는 근로자라는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 측엔 근로자의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되었고 이때부터 연공제의 뿌리라 할 만한 ‘생활임금’의 개념이 정립되었다. 또한 산보의 노자간담회는 생산 관련 사안과 노동자의 고충을 노사가 논의하게 함으로써 이후 직장의 주도권을 두고 노사가 대결하는 전통을 세웠다.(2장)
산업보국회의 활동이 반드시 반(反)노동적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았듯이 미군정이 실시한 노동개혁 또한 복합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미군정의 노동개혁은 노동조합법, 노동기준법 등을 공포하여 세계 최초로 여성의 생리휴가를 규정할 정도로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제도를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중국 국민당 정권의 패배에 따른 냉전의 격화는 미군정 점령정책의 전환을 가져왔고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규정하게끔 했다. 노조의 급진화를 우려한 미군정은 공무원 노조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쟁의권 박탈 조치를 취했으며 국가공무원법을 통해 공공부문 노동운동을 약화시켰다. 한편 미군정의 개혁으로 민간부문 노조는 활발해졌으며 우파 계열의 총동맹과 급진적인 산별회의가 양대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이중 산별회의가 1946년 주도한 전산(전기산업노동조합연합회) 쟁의는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임금을 산정한 ‘전산형 임금체제’를 확립해 일본에서 연공제가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반공 세력인 민동파의 진출로 대규모 레드 퍼지(적색 노동자 색출)가 이어졌고 그에 따른 노조의 분열은 ‘전산’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결국 산별노조가 무력화되고 기업별노조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처럼 미군정 개혁기는 연공제와 기업별노조라는 일본적 노사관계의 두 축이 성립된 시기였으며 반공적 노조의 진출에 의해 상처받은 진보 노조와 정치세력에 강한 반미의식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3장)
이후 1955년부터 1973년 석유파동 이전까지 일본은 기술혁신을 통한 설비투자, 3종의 신기로 불리는 자동차, 가전제품, 내구성 소비재 산업의 호황을 바탕으로 기업이 사회통합의 구심점이 되는 ‘기업사회’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 일본 노동운동은 ‘춘투’로 대변되는 경제적 실리추구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총평이 주도한 춘투는 원래 교섭 시기를 집중시켜 기업별노조가 지닌 교섭력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취지였고 실제로 매년 10%를 넘는 임금인상률을 달성할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 같은 춘투의 취지가 실리추구를 지향하는 노동운동으로 완전히 고착된 것은 IMF-JC(국제금속노련 일본협의회)로 대변되는 민간대기업 노조의 발족 이후였다. 이때부터 계급운동적 노동운동은 위축되고 상호신뢰적 노사관계를 표방하는 일본적 노사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풍요의 시대를 맞은 연공적 질서는 연공제가 오히려 능력주의를 훼손한다고 생각하는 고학력 청년 노동자의 등장으로 훼손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때부터 노조 간부직이 기업 내부의 승진 통로가 되거나 노조와 조합원 사이가 괴리되는 현상이 심해졌고 임시공 같은 비정규직이 노동력 관리의 수량적 유연성을 제공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이런 변화는 사회통합의 위기를 초래하면서 신좌익 노동운동이 발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학생운동과 결합한 신좌익 세력은 자본주의체제 자체의 변혁을 시도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했으며 급진적 반전, 반제 평화운동을 시도했으나 일반 노동자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또한 이러한 사회통합의 위기를 맞아 일본 기업은 직장 수준에서의 자주관리활동을 조직하여 노동자 스스로 경영목표 달성에 나서도록 유도하면서 안정된 노사관계를 도모했다.(4장)
노동운동의 이질화와 사회적 균열
1973년 석유파동 이후 고도경제성장기가 종말을 고하자 일본 노사관계에서는 고용조정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었다. 일본의 기업별노조는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기회 확보를 우선하면서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자제하는 쪽으로 대응했으며 각종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와 정사원의 재배치를 묵인했다. 그 결과 기업은 외부노동시장에 있는 비정규직을 활용해 노동력 관리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본 노동자들은 민간대기업 노사융합을 실현하며 기업사회 일본에 강력하게 통합된 집단과 노동력 관리의 수량적 유연성을 제공하는 비정규직 주변부 노동자로 이질화되었다. 일본적 노사관계를 특징짓던 연공제 또한 변화의 물결을 피하지 못했다. 일본 노사는 직무급의 도입 등을 통해 연공제의 취지를 더욱 희석시켰으며 능력주의를 강조하면서 감독관의 사정권을 확대시켰다. 반면 연공제의 핵심 기반인 종신고용은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에 이를 보장받는 중심부 노동자와 여기에서 소외된 주변부 노동자 사이의 이질화는 더욱 심해졌다. 한편 일본 기업은 주변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규직에 기반을 둔 일본 노조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호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결국 이주노동자는 가장 취약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 이들은 지역 기반의 코뮤니티 유니온 같은 신형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5장)
고도경제성장기의 종언에 따라 중심부와 주변부 노동자의 이질화가 심화됨에 따라 노동운동 역시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고율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춘투에 의존할 수 없게 된 민간대기업 노조는 정책참가와 경영참가 활동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을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에 입각한 공기업의 민영화는 일본 사회에 남아 있던 계급운동적 노동운동 세력을 무력화시키면서 노동전선 통일을 촉진했고 이는 1989년 전국 수준의 노조 중앙조직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연합)의 설립으로 귀결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정책참가와 경영참가를 통한 민간대기업 노사융합이 이뤄졌다. 반면 신자유주의적 기획에서 완전히 소외된 비정규직 등은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소수파 노동운동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시간제 고용자 노조’, ‘코뮤니티 유니온’, ‘실업자 노조’ 등 기존 노조와 구별되는 ‘신형노동조합’을 구성하거나 사안별로 쟁의단을 구성하여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도산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자주생산 쟁의를 벌여 대안적 사회운동을 모색했다. 이런 과정은 기업사회 일본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수파의 존재를 드러냈다. (6장)
1995년 일경련이 발표한 보고서 「새로운 시대의 일본적 경영」은 장기 고용할 종업원과 필요할 때마다 유연하게 조달할 종업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담고 있었다. 이는 종업원을 가족으로 간주하던 일본적 경영을 포기한다는 선언이며 사실상 ‘기업사회 일본’의 해체를 의미하는 선언이었다. 기업사회 일본의 추락과 함께 비정규 사원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려는 새로운 노동운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청년유니온’, ‘여성유니온’, ‘아르바이트유니온’ 등 새로운 조직들이 꾸준히 생겨났다. 이처럼 정사원 집단과 비정규 집단 사이의 사회적 균열은 계속 확대되면서 일본의 사회통합 수준은 꾸준히 저하되고 있다. 현재 일본 사회는 기업사회 외부에 존재하는 개인을 존중하는 방향의 개혁을 추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제는 일본만의 것이 아니며 우리 기업과 노동운동이 마주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의 노동문제 및 노사관계에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7장)
일본모델의 한계를 넘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을 거듭해온 일본의 배경에는 이른바 ‘일본적 노사관계’라는 모델이 자리잡고 있다. 근대화를 오롯이 이루면서도 기업과 노조가 갈등과 분열보다는 상호협조적인 관계를 보여준 ‘일본모델’에 세계는 비상한 관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일본을 거울삼아 자국의 노사관계를 정립해보려는 실용적 목적이 앞선 나머지, 일본모델은 흔히 가족과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일본의 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거나 국가와 자본의 탄압을 강조하는 단순한 음모론에 기울기 일쑤였다.
이 책은 일본적 노사관계를 문화적 특수성에서 찾는 담론, 즉 이에(家) 제도라든가 화(和)을 중요시하는 문화 덕분에 가족 같은 노사관계가 성립되었다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연공제와 기업별노조를 중심으로 사회통합을 꾀한 ‘기업사회 일본’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사회적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도전받았고 지금도 변모중인 역사적 산물이다. 일본의 연공제는 고도성장기와 그 종언을 거치면서 한계를 드러냈고 정규직으로 그 적용 대상이 축소되었다.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사회통합 역시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되면서 점점 분열과 해체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체적 조감도 안에서 국가총동원체제 이후 현재까지 일본 노사관계의 사회사적 궤적을 하나하나 되짚어나간다.(1장)
이 책은 일본의 현대적 노사관계의 출발을 미군정의 노동개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총력전 시기의 국가총동원체제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이른바 산업보국회(산보)는 전쟁 수행을 위한 어용기관으로 전시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노동력 동원에는 큰 성과가 없었던 반면 의외의 효과가 만들어졌는데 그전까지는 자본가의 가족으로 취급되던 노동자에게 국가에 기여하는 근로자라는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 측엔 근로자의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되었고 이때부터 연공제의 뿌리라 할 만한 ‘생활임금’의 개념이 정립되었다. 또한 산보의 노자간담회는 생산 관련 사안과 노동자의 고충을 노사가 논의하게 함으로써 이후 직장의 주도권을 두고 노사가 대결하는 전통을 세웠다.(2장)
산업보국회의 활동이 반드시 반(反)노동적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았듯이 미군정이 실시한 노동개혁 또한 복합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미군정의 노동개혁은 노동조합법, 노동기준법 등을 공포하여 세계 최초로 여성의 생리휴가를 규정할 정도로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제도를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중국 국민당 정권의 패배에 따른 냉전의 격화는 미군정 점령정책의 전환을 가져왔고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규정하게끔 했다. 노조의 급진화를 우려한 미군정은 공무원 노조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쟁의권 박탈 조치를 취했으며 국가공무원법을 통해 공공부문 노동운동을 약화시켰다. 한편 미군정의 개혁으로 민간부문 노조는 활발해졌으며 우파 계열의 총동맹과 급진적인 산별회의가 양대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이중 산별회의가 1946년 주도한 전산(전기산업노동조합연합회) 쟁의는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임금을 산정한 ‘전산형 임금체제’를 확립해 일본에서 연공제가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반공 세력인 민동파의 진출로 대규모 레드 퍼지(적색 노동자 색출)가 이어졌고 그에 따른 노조의 분열은 ‘전산’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결국 산별노조가 무력화되고 기업별노조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처럼 미군정 개혁기는 연공제와 기업별노조라는 일본적 노사관계의 두 축이 성립된 시기였으며 반공적 노조의 진출에 의해 상처받은 진보 노조와 정치세력에 강한 반미의식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3장)
이후 1955년부터 1973년 석유파동 이전까지 일본은 기술혁신을 통한 설비투자, 3종의 신기로 불리는 자동차, 가전제품, 내구성 소비재 산업의 호황을 바탕으로 기업이 사회통합의 구심점이 되는 ‘기업사회’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 일본 노동운동은 ‘춘투’로 대변되는 경제적 실리추구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총평이 주도한 춘투는 원래 교섭 시기를 집중시켜 기업별노조가 지닌 교섭력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취지였고 실제로 매년 10%를 넘는 임금인상률을 달성할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 같은 춘투의 취지가 실리추구를 지향하는 노동운동으로 완전히 고착된 것은 IMF-JC(국제금속노련 일본협의회)로 대변되는 민간대기업 노조의 발족 이후였다. 이때부터 계급운동적 노동운동은 위축되고 상호신뢰적 노사관계를 표방하는 일본적 노사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풍요의 시대를 맞은 연공적 질서는 연공제가 오히려 능력주의를 훼손한다고 생각하는 고학력 청년 노동자의 등장으로 훼손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때부터 노조 간부직이 기업 내부의 승진 통로가 되거나 노조와 조합원 사이가 괴리되는 현상이 심해졌고 임시공 같은 비정규직이 노동력 관리의 수량적 유연성을 제공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이런 변화는 사회통합의 위기를 초래하면서 신좌익 노동운동이 발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학생운동과 결합한 신좌익 세력은 자본주의체제 자체의 변혁을 시도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했으며 급진적 반전, 반제 평화운동을 시도했으나 일반 노동자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또한 이러한 사회통합의 위기를 맞아 일본 기업은 직장 수준에서의 자주관리활동을 조직하여 노동자 스스로 경영목표 달성에 나서도록 유도하면서 안정된 노사관계를 도모했다.(4장)
노동운동의 이질화와 사회적 균열
1973년 석유파동 이후 고도경제성장기가 종말을 고하자 일본 노사관계에서는 고용조정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었다. 일본의 기업별노조는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기회 확보를 우선하면서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자제하는 쪽으로 대응했으며 각종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와 정사원의 재배치를 묵인했다. 그 결과 기업은 외부노동시장에 있는 비정규직을 활용해 노동력 관리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본 노동자들은 민간대기업 노사융합을 실현하며 기업사회 일본에 강력하게 통합된 집단과 노동력 관리의 수량적 유연성을 제공하는 비정규직 주변부 노동자로 이질화되었다. 일본적 노사관계를 특징짓던 연공제 또한 변화의 물결을 피하지 못했다. 일본 노사는 직무급의 도입 등을 통해 연공제의 취지를 더욱 희석시켰으며 능력주의를 강조하면서 감독관의 사정권을 확대시켰다. 반면 연공제의 핵심 기반인 종신고용은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에 이를 보장받는 중심부 노동자와 여기에서 소외된 주변부 노동자 사이의 이질화는 더욱 심해졌다. 한편 일본 기업은 주변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규직에 기반을 둔 일본 노조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호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결국 이주노동자는 가장 취약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 이들은 지역 기반의 코뮤니티 유니온 같은 신형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5장)
고도경제성장기의 종언에 따라 중심부와 주변부 노동자의 이질화가 심화됨에 따라 노동운동 역시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고율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춘투에 의존할 수 없게 된 민간대기업 노조는 정책참가와 경영참가 활동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을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에 입각한 공기업의 민영화는 일본 사회에 남아 있던 계급운동적 노동운동 세력을 무력화시키면서 노동전선 통일을 촉진했고 이는 1989년 전국 수준의 노조 중앙조직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연합)의 설립으로 귀결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정책참가와 경영참가를 통한 민간대기업 노사융합이 이뤄졌다. 반면 신자유주의적 기획에서 완전히 소외된 비정규직 등은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소수파 노동운동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시간제 고용자 노조’, ‘코뮤니티 유니온’, ‘실업자 노조’ 등 기존 노조와 구별되는 ‘신형노동조합’을 구성하거나 사안별로 쟁의단을 구성하여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도산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자주생산 쟁의를 벌여 대안적 사회운동을 모색했다. 이런 과정은 기업사회 일본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수파의 존재를 드러냈다. (6장)
1995년 일경련이 발표한 보고서 「새로운 시대의 일본적 경영」은 장기 고용할 종업원과 필요할 때마다 유연하게 조달할 종업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담고 있었다. 이는 종업원을 가족으로 간주하던 일본적 경영을 포기한다는 선언이며 사실상 ‘기업사회 일본’의 해체를 의미하는 선언이었다. 기업사회 일본의 추락과 함께 비정규 사원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려는 새로운 노동운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청년유니온’, ‘여성유니온’, ‘아르바이트유니온’ 등 새로운 조직들이 꾸준히 생겨났다. 이처럼 정사원 집단과 비정규 집단 사이의 사회적 균열은 계속 확대되면서 일본의 사회통합 수준은 꾸준히 저하되고 있다. 현재 일본 사회는 기업사회 외부에 존재하는 개인을 존중하는 방향의 개혁을 추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제는 일본만의 것이 아니며 우리 기업과 노동운동이 마주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의 노동문제 및 노사관계에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7장)
출판사
북인더갭
ISBN
979-11-85359-45-8
출판년도
1 Jan 2022 – 30 Nov 2022
전문영역
사회과학
주제
사회
지역
일본